드디어 둘째날. 오늘의 목표는 수산리에서 주문진까지 걸어가기다.
길고 길던 밤이 끝나고 해가 뜨기까지는 너무나 큰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침낭을 덮고 잤으나 성능이 좋질 않아 나와 친구 둘다 추위에 떨었던 것. 자다가 깨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고스라니 느껴야만 했다. 좀 더 두꺼운 매트만 가져왔어도 잘만 했을텐데... 게다가 바다와 바로 맞닿아있는 전망대에서 텐트를 쳤더니 그 추위는 정말 가공할만 하였다.
이 버스 정류장 옆 좌측 옆길로 들어가면 어제밤 텐트치고 잤던 수산항이 나온다. 오지게 추웠지만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식수도 잠자리도 모두 구하지 못한채 어두운밤 이곳저곳 떠돌았을 지 모른다. 그만큼 해가 지기전에 잠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밤에 도로를 걸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정말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수산리 버스 정류장 표시. 어제 슈퍼와 숙영지를 찾는 데 너무나 체력소모가 컸던 탓에 또한 잠도 제대로 못잤기에 몸이 어제와 다른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렇게 자전거도로가 잘 깔려있어서 걷는 여행하는데도 참 좋았다. 다만 자전거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도보여행의 수요가 많아져서 여러 편의 시설들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슨 농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역주민이 농사를 짓는 곳 같다.
이렇게 길이 잘 닦여있으면 걷기가 참 좋다. 보통 이런 길을 따라 가다보면 다시 바다가 보이게 된다. 새로운 해안과 바다를 보는 맛에 계속 걸었다.
군부대가 많다보니 해안을 따라 걸으면 해안초소가 곳곳에 있다. 역시 낮에는 보초를 서지 않는 것 같다.
초소앞 작은 해안이 있다. 민간인은 갈 수 없는 곳.
도로가 항상 해안가로 쭉 나있으면 좋겠지만 그런게 아니라 바다가 보였다 안보였다가 하게된다. 그래서 이렇게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을 맞이하면서 바다까지 보일 때는 힘들지만 바다가 보이니까 조금 더 힘이 났던 것 같다. 거대한 해안과 바다 바람의 냄새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언덕을 내려와 어느새 해안에 도착했다. 파도가 넘실넘실 치고 있다. 직접 보고 느낀 점은 "들어갔다가는 정말로 못나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파도가 거셌다는 사실이다.
바다와 해안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지겹다가도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으면 그 파도치는 소리가 너무나도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이렇게 국도로도 걸어본다. 가다보면 자전거도로가 아직 완전하게 깔려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지도 어플과 GPS또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지도 어플을 보고 본인이 갈 곳을 판단해야 했다. 지도 어플에서는 거의 주로 차도만 나오기 때문에 두갈래 길이 있으면 정말 복불복이다. 잘못갔더라도 고집을 부리지 말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와야 시간을 조금이나마 절약할 수가 있다. 우리는 해안길, 자전거도로, 국도 갓길 등을 전전하며 걸었던 것 같다.
이 길에서 아무생각없이 걷고있다가 건너편에서 라보 한대가 오고있었다. 그 라보의 주인은 다름아닌 슈퍼집 아재였다. 아재가 우리를 보더니 깜짝 놀라시더니 손을 흔들어주셨다. 고마워서 아침에 인사를 드리고 가려 했었는데 안계셔서 섭섭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뵙게되서 정말 좋았다. 그 짧은 찰나 우리도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를 했다.
그렇게 또 걸으며 지나가다가 강아지 무리를 발견했다. 강아지 새끼로 보이는 녀석들은 사람들한테 거부감이 별로 없는 듯 우리에게 다가와서 만져달라고 했는데 그놈의 어미로 보이는 녀석이 와서 강렬하게 짖어대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자전거도로였긴 했지만 차도 간간히 다니는 곳이였다.
이놈이 새끼였는데 애교가 넘치는 아이였다.
이놈이 어미인데 역시 어미답게 지새끼를 보호하려고 하는 지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경계를 하는 모습이였다. 똥개새끼...
친구가 갑자기 급똥신호가 와서 들른 곳이다. 사실... 허허벌판에 화장실이고 뭐고 보이질 않아 숲속에서 해결하려던 친구였는데 하늘이 도왔는 지 휴게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만 화장실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고 하니 참고.
지나가다 거북선을 발견했다. 왠 스님으로 보이는 한분이 근처에 계셨다.
혹시라도 일반인에게도 오픈이 되어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들어가는 뒷구멍이 굳게 닫혀있어서 발길을 돌렸다.
이 근방 국도에서 걷다가 군용트럭에 타고 가던 훈련중인 군인들에게 먼저 손을 흔들었더니 열댓명이 손을 흔들어주어서 기뻤다. 친구와 나는 너무도 힘들었던 나머지 이것저것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가게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다음에 또 군인 차량이 오면 군가를 부르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김일병과 어깨춤'이라는 이야기를 창작하기에 이른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도보여행객 2명이 군부대를 지나다 보초를 서고있던 병사인 '김일병'을 만나게 되고 육군 군가 중 하나인 '팔도 사나이'를 부르다가 김일병이 신나게 어깨춤을 추지 못하자 벌칙으로 총기를 빼앗았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 허나 이 말도 안되는 얘기를 정말 재밌게 꾸며댔던 것 같다. 군단에서 '어깨춤 금지 공문'이 내려왔다 위병사관까지 동요되어 어깨춤을 추러나왔다 등등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버렸기 때문.
(군대 얘기 해서 미안하다.)
주문진까지 앞으로 17km! 말이 17km지 한시간에 4~5km 걷는 인간의 걸음으로는 논스톱을로 3-4시간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게다가 이곳은 인도가 눈으로 가득찼었다. 확실히 눈밭이 걷기가 힘들었다.
하조대 해변. 정자각 등대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패스.
점심으로는 해안가 근처 자장면집을 선택했다. 간짜장을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짜장을 이렇게 주신다... 양이 너무너무 푸짐해서 깜짝 놀랐다. 또한 얼큰한 짬뽕 국물이 끌렸기에 추가로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인심 좋은 사장님이 무료로 홍합을 수북히 담아 큰 사발에 짬뽕 국물을 주셨다. 시골 인심에 놀랐다. 배고파서 맛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로 맛이 있어서 맛있었던 점심. 짜장면도 느끼하지 않고 살짝 달달한게 너무 맛있었다.
앞에 바리게이트가 쳐진 곳은 자전거 도로인데 아직 완공이 안되서 쳐놓은 듯 싶다.
겨울에 서핑을 즐기는 분들. 거리가 멀고 또한 수트를 입어 남녀분간도 되진 않지만 너무 멋있으시다. 지금 이 사진을 보니 파도를 타는 모습을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석양, 섬, 구름, 파도, 모래, 눈, 바위 등등이 모두 들어가있는 사진.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
여지없이 갓길코스가 이어졌다. 대형 차량은 물론 소형 차량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갓길로 걸을 때는 조심에 조심을 해야한다. 게다가 눈이 와서 갓길이 좁아진 것은 함정이였다.
갈매기들도 쉬어가는 방파제 옆 작은 모래사장. 몸단장이 한창인 녀석들이였다.
앞에 보이는 광나루 횟집 간판. 광나루 횟집 몇킬로미터 앞이라는 광고를 처음본 후 실제로 여기 오기까지는 대략 2~3시간 정도가 소요됬던 것 같다. 그래서 별 것도 아닌데 왠지 반갑더라... 여길 넘어가면 간이 휴게소가 있던 게 기억난다. 이 이후부터는 몸이 점점 망가져가는 게 느껴져서 사진을 적절히 남기지 못했다.
이 사진부터는 조금 의미가 있다. 속초부터 주문진까지 걸어가고 있지만 그 사이에 정말 수많은 해수욕장이있다. 대략 지금 기억하기로는 거의 20개 육박할 정도로 해수욕장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의미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곳부터는 진정으로 해안도로가 있어 바닷가를 항상 보며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도로로 가기 위해 바다근처 마을을 잠시 지나치는 중에 새떼를 발견하고 한 컷 찍음.
사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지만 막 찍은 사진중에서 그나마 내 맘에 드는 사진이다. 갈매기들이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상당히 맘에 든다.
이건 라이트룸으로 살짝 보정을 한 후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보정 후가 조금 더 맘에 든다.
바위가 거대하길래 찍어봤는데 사진상으로는 별로 안커보인다.
걸어서 여행하다보니 하도 많은 곳은 지나고 많은 것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지역을 기억할 수 있는 건물이라던지 표지판 같은 것을 찍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남애 1리에서 목표한 곳, 주문진까지는 걸어서 앞으로 2시간 안팎으로 남은 상태였다. 그치만 이 이후로는 사진이 아예없다. 왜냐면 나와 친구 모두 거의 실신 상태였기 때문. 나는 거의 발이 아작나가는 중이였고 친구는 배낭의 무게때문에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이 이후로도 아득히 먼거리를 걸으며 거의 반정신줄을 놓고 걸었던 것 같다.
주문진에 왔다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찰나 이번 여행계획을 상당 부분 수정하기로 사실 마음을 먹으며 걸어왔었다. 왜냐면 나와 친구 둘다 어제 하루 추워 죽는 줄 알았던 텐트 야영 후 몸이 거의 맛이 가버렸기 때문. 원래 3박 4일 계획에 3박을 모두 야외에서 자기로 마음을 먹고 왔었지만... 그 당시 우리의 몸 상태로는 정말 그렇게 했다간 병원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고단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주문진 도착을 하면 모텔로 바로 직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걸었다.
쩔둑거리며 주문진까진 잘 도착했지만 주문진 시내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가파른 언덕을 만난 것. 그렇지 않아도 죽기살기로 걷고 있었는데 거의 등산급의 오르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 이후로는 더 정신이 나간 상태로 걸었던 것 같다. 해탈의 경지로. 아쉽게도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던 상황이라 사진은 찍지 못했다.
그리고 모텔을 잡고 저녁을 먹고 그대로 실신.
한겨울에 벌벌떨며 밖에서 자고 온몸이 퉁퉁붓도록 걸으며 찍은 사진들입니다. 조금이라도 재밌게 보셨다면 하단에 공감버튼 한번 눌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로그인 안하셔도 가능합니다.
'기타 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보]미국 나사(NASA) 소행성 충돌 실험 성공! (0) | 2022.09.27 |
---|---|
2015 한겨울의 강원도 도보여행기 #3 (0) | 2016.07.18 |
2015 한겨울의 강원도 도보여행기 #1 - 2 (0) | 2016.07.18 |
2015 한겨울의 강원도 도보여행기 #1 - 1 (12) | 2016.07.18 |
서브용 디카 정리 (0) | 2016.03.29 |
댓글